
개발자로, 기획자로, PM으로 ㅡ 그래도 나는 늘 만드는 사람이었다.
#3.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처럼
교육 기간에는 웬만해선 사람을 찾지 않는, 꽤 인격적인 문화의 회사였다.
그런데 그날은 수업 후에 잠깐 볼 수 있겠냐는 부서장님의 연락이 왔다.
순간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끝나자마자 덜덜 떨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부서장님은 값비싼 과일 주스에 달콤한 쿠키까지 손에 쥐어주시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회사가 신규 서비스·사업을 발굴할 특별한 조직을 만든다고. 우선 6개월의 시간이 주어지고, 존속 여부는 6개월 뒤에 결정된다고.
기획·디자인·개발이 한 팀(whole team)으로 스타트업처럼 일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 팀에, 나를 추천했다고.
입사 8년 만에, 새로운 팀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하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이런 것이었다.
1. 즐겁고 재미있는 일
2.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
3.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일
이제, 그 기회가 온 것이다. 대기업의 자원을 등에 업고,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기회.
우리 팀에 주어진 조건은 두 가지였다 — 협업, 그리고 대외사업. 대외에서 경쟁력 있는 협업 툴을 만든다면, 그다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
'협업 툴'이라는 방향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막막했다. 춘추전국시대처럼 온갖 협업 툴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 과연 어떤 걸 만들어야 경쟁력이 있을까?
그래서 우선, 시장을 닥치는 대로 파고들었다. (지나고 보니 이게 바로 '비즈니스 리서치'였다.)
이미 우리 회사가 하고 있는 영역은 빼고, 눈에 들어온 건 '화이트보드 기반 협업 툴'이었다.
처음엔 생소했지만, 하나의 시장으로 자리 잡을 만큼 수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파고들수록 문제도 또렷해졌다. 사람들은 협업 툴을 보통 5개, 많게는 9개씩 쓰고 있었다.
그 사이를 오가느라 하루 수백 번 창을 전환하고, 다시 업무에 집중하는 데만 매번 한참이 걸렸다.
흩어진 도구들이 오히려 생산성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이거야. 우리는 이 문제를 풀고 싶어졌다.
물론 순탄하진 않았다. 막상 들여다보니 이미 훌륭한 서비스들이 세상에 나와 있었다.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것들과 어떻게 경쟁하지…?' 솔직히, 처음엔 좌절했다.
그런데 계속 들여다보니, 우리에게도 보이는 게 있었다.
사람들은 화이트보드를 아이디어가 필요한 '발산의 순간'엔 활발히 쓰다가,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찾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화이트보드의 한계일까? 우리는 이 도구를 고수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계속 쓰게 만들 수 있을까?
돌아봐도 이 시기가 가장 오르내림이 심했고, 팀 전체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때였다.
답이 쉽게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우리는 이 한마디로 서로를 다독이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지금 돌아보면, 정답을 찾았느냐 아니냐를 떠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답 없는 문제 앞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한 몸처럼 달리던 사람들.
대기업의 안정감 위에서 스타트업의 속도로 일하던 그 감각. 나는 그때, 꽤 나답게 일하고 있었다.
— 그리고 나는, 진짜 스타트업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CONTACT: https://www.linkedin.com/in/jeehea-lee-3962b8a5/
개발자로, 기획자로, PM으로 ㅡ 그래도 나는 늘 만드는 사람이었다.
#3.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처럼
교육 기간에는 웬만해선 사람을 찾지 않는, 꽤 인격적인 문화의 회사였다.
그런데 그날은 수업 후에 잠깐 볼 수 있겠냐는 부서장님의 연락이 왔다.
순간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끝나자마자 덜덜 떨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부서장님은 값비싼 과일 주스에 달콤한 쿠키까지 손에 쥐어주시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회사가 신규 서비스·사업을 발굴할 특별한 조직을 만든다고. 우선 6개월의 시간이 주어지고, 존속 여부는 6개월 뒤에 결정된다고.
기획·디자인·개발이 한 팀(whole team)으로 스타트업처럼 일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 팀에, 나를 추천했다고.
입사 8년 만에, 새로운 팀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하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이런 것이었다.
1. 즐겁고 재미있는 일
2.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
3.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일
이제, 그 기회가 온 것이다. 대기업의 자원을 등에 업고,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기회.
우리 팀에 주어진 조건은 두 가지였다 — 협업, 그리고 대외사업. 대외에서 경쟁력 있는 협업 툴을 만든다면, 그다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
'협업 툴'이라는 방향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막막했다. 춘추전국시대처럼 온갖 협업 툴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 과연 어떤 걸 만들어야 경쟁력이 있을까?
그래서 우선, 시장을 닥치는 대로 파고들었다. (지나고 보니 이게 바로 '비즈니스 리서치'였다.)
이미 우리 회사가 하고 있는 영역은 빼고, 눈에 들어온 건 '화이트보드 기반 협업 툴'이었다.
처음엔 생소했지만, 하나의 시장으로 자리 잡을 만큼 수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파고들수록 문제도 또렷해졌다. 사람들은 협업 툴을 보통 5개, 많게는 9개씩 쓰고 있었다.
그 사이를 오가느라 하루 수백 번 창을 전환하고, 다시 업무에 집중하는 데만 매번 한참이 걸렸다.
흩어진 도구들이 오히려 생산성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이거야. 우리는 이 문제를 풀고 싶어졌다.
물론 순탄하진 않았다. 막상 들여다보니 이미 훌륭한 서비스들이 세상에 나와 있었다.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것들과 어떻게 경쟁하지…?' 솔직히, 처음엔 좌절했다.
그런데 계속 들여다보니, 우리에게도 보이는 게 있었다.
사람들은 화이트보드를 아이디어가 필요한 '발산의 순간'엔 활발히 쓰다가,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찾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화이트보드의 한계일까? 우리는 이 도구를 고수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계속 쓰게 만들 수 있을까?
돌아봐도 이 시기가 가장 오르내림이 심했고, 팀 전체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때였다.
답이 쉽게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우리는 이 한마디로 서로를 다독이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지금 돌아보면, 정답을 찾았느냐 아니냐를 떠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답 없는 문제 앞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한 몸처럼 달리던 사람들.
대기업의 안정감 위에서 스타트업의 속도로 일하던 그 감각. 나는 그때, 꽤 나답게 일하고 있었다.
— 그리고 나는, 진짜 스타트업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CONTACT: https://www.linkedin.com/in/jeehea-lee-3962b8a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