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나는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
크리스마스 성극이었다. 조명이 켜지는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대사를 내뱉는 순간 관객의 숨소리가 들렸다. 공연이 끝나고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을 때, 나는 그 느낌을 절대 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다는 감각.
그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을 되찾기 위해 나는 이후 30년을 헤맸다.
설레면 시작하고, 의미를 잃으면 떠났다
스물여덟, IT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가슴이 뛰지 않았다. 우연히 읽은 책에서 "언제 가슴이 가장 뜨거웠는가"를 묻고 있었다. 또 "불타는 갑판에서 뛰어내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문득 고등학교 때 무대가 생각났다.
그래서 결심했다. 퇴근 후 몰래 연기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본부장님을 찾아가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낮에는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의외로 허락이 떨어졌다.
1년 6개월 동안 매일 직장과 연기학원을 병행했다.
그 시절 나는 알게 되었다.
진정성 있게 말하면 통한다는 것.
원하는 것을 위해 직접 부딪히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열린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고, "뒷바라지하겠다"는 아내의 말을 뒤로한 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꿈을 접게 되었다.
이후 잡지사로 이직해 IT 플랫폼을 만들고 직접 세일즈를 하면서 광고 영업 업무를 맡게 되었다. 아들 둘을 낳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이어갔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손으로 뭔가를 만들 때, 나는 살아있었다
2010년 취미로 목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액자를 만들었다.
선반, 의자, 책장, 책상, 식탁, 침대, 그리고 나중에는 목조주택까지 만들었다.
톱질을 하다 손을 베어도 몰랐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완성된 가구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오래 잊었던 그 감각이 되살아났다.
이것으로 먹고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스승님들조차 생계를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6년간의 목공을 정리하게 되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다시 시작하다
2016년 시민배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지원하고 오디션을 보고 합격한 뒤에야 아내에게 알릴 수 있었다.
세 번 나오는 단역이었지만 다시 서는 무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계속 무대에 서고 싶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시민극단을 창단했다.
첫 공연을 올리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아마 혼자였다면 결혼 전처럼 또 포기했을 것이다.
그 뒤로 1년에 두 번씩 정기공연을 하며 6년간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돈을 쫓았더니 나를 잃었다
2019년, 나는 부동산에 뛰어들었다.
새 아파트에 전세 1억 3천만 원으로 들어가 8년을 살았는데 전세금이 3억 6천만 원이 되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부동산을 모르면 호구가 된다는 것을.
결심했다.
6개월 만에 첫 아파트를 매입했고, 1년 만에 2억 원이 올랐다.
짜릿했다.
경매를 배우고 제주도 빌라 감정가 11억 원짜리를 6억 8천만 원에 낙찰받았다.
흥분되었다.
왜 이걸 이제 알았을까.
부동산 분양업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한 달에 2~3천만 원씩 벌었다.
번 돈으로 또 투자했다.
종목도 확대했다.
아파트, 빌라, 농지, 임야, 상가부지, 전원주택부지, 아파트 부지, 부동산 관련 코인.
분야도 넓어졌다.
오피스, 상가, 오피스텔, 토지, 코인, 토지보상대행, 경매대행, 분양대행으로 4개월간 30억 원을 수주했다.
1억 원 투자한 코인이 18억 원이 되었다.
3년간 10건의 부동산을 계약했다.
초심자의 행운과 부동산 사이클의 끝물, 그리고 유동성 흐름이 만난 결과였다.
진정한 나의 실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코로나가 정리될 무렵, 18억 원짜리 코인은 휴지 조각이 되었고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매입한 부동산들의 잔금을 치르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감당하지 못했다.
집을 팔고 처분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처분했음에도 부족했다.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아직도 그때의 후폭풍을 감당하고 있다.
13종의 검사,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
지금까지 받아본 자기이해 검사만 13종이다.
다들 잘 아는 MBTI부터 애니어그램, 스트렝스파인더, DISC, TCI 기질검사, MMPI, Big5, 꿈벗 프로그램, 자기다움, ABS, MyOwn Ego까지.
새벽 기상 챌린지도 100일씩 다섯 번을 완주했다.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수십 개의 프로그램을 거쳤다.
최근 MyOwn Ego 검사에서는 자기효능감, 감성, 협업, 의사소통, 리더십이 모두 상위권으로 나왔다.
그렇게 긴 시간 끝에 두 단어를 찾았다.
설렘과 동행.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질 때, 그것이 바로 내 일의 신호라는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닌 함께일 때 더 높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것.
지금 나는 연극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51세인 지금, 나는 연극 원데이 클래스를 준비하고 있다.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클래스가 아니다.
감정 표현이 어려운 사람, 마음 한구석이 오래 막혀 있던 사람들을 위한 자리다.
몸을 움직이고, 말로 표현하고, 서로의 거울이 되어 주면서 자신도 몰랐던 나를 만나는 2시간.
무대에서 내가 처음 느꼈던 그 감각.
살아있다는 그 느낌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나는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나다움이라는 것을.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다.
목표를 정하고, 실행하고, 기록하고, 복기하면서 피드백하고 수정하는 것.
이 사이클을 멈추지 말라고.
그리고 제발 돈보다는 의미를 먼저 선택하고, 혼자 찾으려 하지 말고, 함께 찾아달라고.
나와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내 시행착오가 여러분의 지름길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30년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는 것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 CONTACT: https://www.threads.com/@reborn_in51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나는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
크리스마스 성극이었다. 조명이 켜지는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대사를 내뱉는 순간 관객의 숨소리가 들렸다. 공연이 끝나고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을 때, 나는 그 느낌을 절대 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다는 감각.
그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을 되찾기 위해 나는 이후 30년을 헤맸다.
설레면 시작하고, 의미를 잃으면 떠났다
스물여덟, IT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가슴이 뛰지 않았다. 우연히 읽은 책에서 "언제 가슴이 가장 뜨거웠는가"를 묻고 있었다. 또 "불타는 갑판에서 뛰어내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문득 고등학교 때 무대가 생각났다.
그래서 결심했다. 퇴근 후 몰래 연기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본부장님을 찾아가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낮에는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의외로 허락이 떨어졌다.
1년 6개월 동안 매일 직장과 연기학원을 병행했다.
그 시절 나는 알게 되었다.
진정성 있게 말하면 통한다는 것.
원하는 것을 위해 직접 부딪히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열린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고, "뒷바라지하겠다"는 아내의 말을 뒤로한 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꿈을 접게 되었다.
이후 잡지사로 이직해 IT 플랫폼을 만들고 직접 세일즈를 하면서 광고 영업 업무를 맡게 되었다. 아들 둘을 낳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이어갔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손으로 뭔가를 만들 때, 나는 살아있었다
2010년 취미로 목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액자를 만들었다.
선반, 의자, 책장, 책상, 식탁, 침대, 그리고 나중에는 목조주택까지 만들었다.
톱질을 하다 손을 베어도 몰랐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완성된 가구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오래 잊었던 그 감각이 되살아났다.
이것으로 먹고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스승님들조차 생계를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6년간의 목공을 정리하게 되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다시 시작하다
2016년 시민배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지원하고 오디션을 보고 합격한 뒤에야 아내에게 알릴 수 있었다.
세 번 나오는 단역이었지만 다시 서는 무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계속 무대에 서고 싶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시민극단을 창단했다.
첫 공연을 올리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아마 혼자였다면 결혼 전처럼 또 포기했을 것이다.
그 뒤로 1년에 두 번씩 정기공연을 하며 6년간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돈을 쫓았더니 나를 잃었다
2019년, 나는 부동산에 뛰어들었다.
새 아파트에 전세 1억 3천만 원으로 들어가 8년을 살았는데 전세금이 3억 6천만 원이 되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부동산을 모르면 호구가 된다는 것을.
결심했다.
6개월 만에 첫 아파트를 매입했고, 1년 만에 2억 원이 올랐다.
짜릿했다.
경매를 배우고 제주도 빌라 감정가 11억 원짜리를 6억 8천만 원에 낙찰받았다.
흥분되었다.
왜 이걸 이제 알았을까.
부동산 분양업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한 달에 2~3천만 원씩 벌었다.
번 돈으로 또 투자했다.
종목도 확대했다.
아파트, 빌라, 농지, 임야, 상가부지, 전원주택부지, 아파트 부지, 부동산 관련 코인.
분야도 넓어졌다.
오피스, 상가, 오피스텔, 토지, 코인, 토지보상대행, 경매대행, 분양대행으로 4개월간 30억 원을 수주했다.
1억 원 투자한 코인이 18억 원이 되었다.
3년간 10건의 부동산을 계약했다.
초심자의 행운과 부동산 사이클의 끝물, 그리고 유동성 흐름이 만난 결과였다.
진정한 나의 실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코로나가 정리될 무렵, 18억 원짜리 코인은 휴지 조각이 되었고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매입한 부동산들의 잔금을 치르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감당하지 못했다.
집을 팔고 처분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처분했음에도 부족했다.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아직도 그때의 후폭풍을 감당하고 있다.
13종의 검사,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
지금까지 받아본 자기이해 검사만 13종이다.
다들 잘 아는 MBTI부터 애니어그램, 스트렝스파인더, DISC, TCI 기질검사, MMPI, Big5, 꿈벗 프로그램, 자기다움, ABS, MyOwn Ego까지.
새벽 기상 챌린지도 100일씩 다섯 번을 완주했다.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수십 개의 프로그램을 거쳤다.
최근 MyOwn Ego 검사에서는 자기효능감, 감성, 협업, 의사소통, 리더십이 모두 상위권으로 나왔다.
그렇게 긴 시간 끝에 두 단어를 찾았다.
설렘과 동행.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질 때, 그것이 바로 내 일의 신호라는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닌 함께일 때 더 높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것.
지금 나는 연극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51세인 지금, 나는 연극 원데이 클래스를 준비하고 있다.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클래스가 아니다.
감정 표현이 어려운 사람, 마음 한구석이 오래 막혀 있던 사람들을 위한 자리다.
몸을 움직이고, 말로 표현하고, 서로의 거울이 되어 주면서 자신도 몰랐던 나를 만나는 2시간.
무대에서 내가 처음 느꼈던 그 감각.
살아있다는 그 느낌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나는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나다움이라는 것을.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다.
목표를 정하고, 실행하고, 기록하고, 복기하면서 피드백하고 수정하는 것.
이 사이클을 멈추지 말라고.
그리고 제발 돈보다는 의미를 먼저 선택하고, 혼자 찾으려 하지 말고, 함께 찾아달라고.
나와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내 시행착오가 여러분의 지름길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30년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는 것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 CONTACT: https://www.threads.com/@reborn_in51